결과적으로 <憂息曲>은 눌지왕의 주연상 ‘가무’에서 궁중악으로 재편곡되면서 “憂息樂”이 되었

다. 이는 고려시대에는 향악으로서 춤과 노랫말을 잃어버리고 악 기 반주가 중심이 되는 기악곡 <

憂息曲>이 되어 조선초기까지 명맥을 유지했 다.63) 즉, 춤과 음악, 연주가 어울러졌던 형태에서

점점 단순화되어 가는 것이다. 신라시대 이러한 酒宴에 여성들도 같이 참여했을 것이다. 우선 唐에

서 남녀가 주연상에 섞여 앉았다고 보고하고 술자리에 얽힌 예들을 들고 있다.64) 또한 신라 에서

는 조선시대와 달리 여성도 기동력이 있었다. 신라여성은 남성과 같이 여행을 했다. 신라초기 알영

부인은 왕과 같이 순수길에 오르고 있다. 또 수로부인은 남편 이 벼슬살이를 위해 강릉으로 갈 때

같이 갔다. 이는 조선시대와는 다른 것이다.65) 그리고 고대의 여성이 수레를 타는 일은 종종 보인

다. 김흠운의 부인을 책봉하 고 이 부인을 대궐로 부를 때 부인은 수레를 타고 들어왔다.66) 그뿐

아니라, 고구 려 고분 벽화 중 안악 3호분과 덕흥리 고분에 수레를 탄 여성들이 보인다. 또한 고대

의 사료에 의하면, 여성이 말을 타고 달렸음도 확인할 수 있다.67) 신라에서는 여성이 타는 말과 남

성이 타는 말에 대하여도 品마다 말장식을 제한하고 있었다. 이는 신라시대 여성이 말을 타고 다녔

으며, 그것도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교통수단 의 하나였기 때문이라 하겠다. 여성들이 승마했을 가

능성은 울주(蔚州) 천전리 서석의 기록을 통해서도 간접적 으로 추정된다. 이 자료에서는 귀족들

이 들놀이 왔을 때 여인들이 따라와서 들놀 이를 하고 식사를 담당하고 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

다. 그리고 식사를 담당했던 사람들 이름까지 돌에 새겨 놓았다.68) 그런데 당시의 도로사정으로

이 울주 천전 리까지 여성은 수레를 타고 가고 남성들은 말을 탔다면 매우 어려운 나들이가 되었을

것이다. 여성이 남성과 같이 말을 타고 다닐 수 있었기에 이러한 들놀이가 보다 활발했을 수도 있

다. 우리는 이 사실로서 고대사회 여성들의 기동성 및 활동력을 다시 평가해 볼 수 있겠다. 현재의

여성사 연구 업적은 고대의 여성들은 조선시대의 여성들보다 훨씬 자유로운 규범 속에서 생활했

음을 찾아내고 있다.69) 여성이 말을 탔다고 하는 일 은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라 하겠다.70) 술은

어떠했을까? 술은 상고시대 천지신명에게 제례를 올릴 때에 반드시 갖추 어야 하는 신성한 祭物로

서 음식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음식물로 인정해 왔다. 술에 관하여 󰡔삼국사기󰡕, 󰡔삼국유사󰡕에는 美

醞, 旨酒, 醪醞 등의 말이 나온다. 미온, 지 주는 좋은 술이겠고, 요온은 막걸리나 예주를 가리키는

것이다. 신라의 술에 대한 제조법은 없으나, 당시 술이 곡주임은 분명하다. 이러한 고대의 술은 중

국에도 널리 알려졌다. 또 백제에서는 日本에 造酒法을 가르쳐 주었다. 󰡔古事記󰡕에는 應神天皇

(270~312) 때 백제에서 仁審(須須保利: 수 수코리)이란 사람이 와서 누룩을 써서 술을 빚는 新法

을 가르치고 일본의 酒神이 되었다고 한다.71) 한편, 술잔은 통일신라기 왕실에서는 금, 은, 옥등으

로 잔을 만들었다. 안압지에 서 나온 유물로 보면 술잔으로는 옻칠 잔을 사용했으리라 생각된다.

안압지에서는 鉢에 가까운 그릇들이 많이 나왔는데, 주로 곡주를 마셨던 당시 사회에서는 술잔 으

로 이러한 발이 이용되었을 수 있겠다. 한편, 소형유리제 용기도 나왔는데72) 이 는 잔으로 사용되

었기에는 양이 너무 적다. 신라시기에 나오는 방울 달린 토기 술 잔들은 안압지 주연에서 쓰이지는

않은 듯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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